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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 트레일러 소설 괴물사냥꾼의 마지막 기록 (4)

27 2018.05.25 15:27

짧은주소

본문

 

 

 내가 마탑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본 건 파르의 손길에 완전히 늘어진 폰과 칼파였다. 애교부릴 힘도 없나본지 완전히 뻗어서 움찔거리는 모습이 쥐약 먹은 고양이 같다고 생각할 무렵.

인기척이 느껴져 마탑의 창문 쪽으로 돌아봤다.

 

"이제 저 모습도 못 볼 거다. 너는 3일안에 심장마비로 죽을 테니까."

 

마탑 근처의 유리창에 비쳐 보이는 검은 부서진 뼈가면을 쓴 남자가 담담하게 말을 걸어온다. 파르에게 뭘 할지 말하기 직전에 찾아온 불청객이다.

창문에 비친 아직 얼굴은 젊은 은발의 엘프는 무표정했다. 나는 괜히 뭐라도 말했다가 방해받는 게 싫었기 때문에 이 녀석이 등장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할지 알면 방해할게 뻔할 테니까.

용암인간 잡은 다음에 술에 빠져 있다가 파르에게 헤이젤을 강림시킬 의식을 한다고 말하려던 참에 찾아와서 답답하게 됐다. 정리의 시간도 이 사신 비슷한 녀석이 온 후 다른 엘프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리 진행되고 있고, 아무래도 내가 산 원한들 중 사신의 추종자라도 있는 것일까.

 

"오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이제 마지막으로 이동 할 테니 준비해라."

"마지막이라 하시면……."

너의 가족이 있는 곳.”

  

 

 

가끔 꿈을 꾼다. 자각몽을 꿀 때면 이성의 수면아래 숨겨져 있던 기억들을 꺼내볼 수 있다.

너무 오래된 건 먼지가 쌓여 볼 수 없지만, 6살 유니그랄텐에서 살던 반년 정도는 가능하다.

 

 

왜 저기에 물건들이 있는 거야?”

먼저 멀리 간 사람들을 추억하려고.”

 

 

피곤해 보이는 아버지가 담담히 얘기해준다. 어머니가 조용히 아버지를 안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 나타나는 건 뿔이 달린...여긴 그만 봐야겠다. 시간이 흐른다. 동부에서 봤던 영화의 빨리 감기처럼 순식간에 흐른다. 아버지가 손가락을 잃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척들이 전부 죽었다. 시체들이 일어서고 친구들이 쫓긴다.

아예 건너뛰어서 7. 첫 번 째 스승을 만난 때이다. 동네 사냥꾼 같은 복장과 여성임을 실루엣으로 알 수 있다. 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모습 이였더라. 초상화라도 그려놓을 걸 그랬다.

 

왜 이름이 없어요?”

규칙을 어겨서 빼앗겼어. 엘프 선생님이나 스승님 중 편한 걸로 불러라.”

부모님의 상점으로 찾아온 단골이었다. 언제나 고기를 들고 오는 것이 너무 부러워서, 동경하다보니 사냥을 배우고 싶었다. 계속해서 붙잡고 늘어지니 받아준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다시 시간이 흐른다. 사냥개를 쓰다듬으면서 재능을 발견한다. 글을 배우면서 악필임을 깨닫는다. 활을 잡고 연습한다. 동경이 발전해버리는 것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처음으로 잡은 짐승은 토끼였다.

 

너는 뭐가 제일 좋아?”

시체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요.”

왜 나를 보고 졸랐는지 알 것 같구나. 처음 널 만났을 때는 이름을 빼앗긴지 얼마 안 된 상태였거든.”

어떻게 다시 일어서신겁니까. 이제 그 답을 알려주십시오.”

 

여기서 선생님은 나를 빤히 보더니 그저 웃었다.

 

그건 비밀이야. 이제부터는 너 알아서 해라.”

.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토끼구이를 함께 먹으면서 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은 무탈하지 못했다. 3일 후 부모님의 가게를 식사시간 동안 맡고 있었을 때 한 사냥꾼이 선생님의 활을 들고 찾아왔다.

 

파르가 너냐?”

. 무슨 일이십니까?”

 

사냥꾼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생님이 거대한 늑대를 노리다가 당했다고 하였다. 나는 멍청하게도 그 소식을 듣고 활을 받고 그 늑대의 영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성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어 늑대들에게 쫓기다가 선생님이 알려줬던 나무들 위로 도망쳤다. 그리고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오래간만에 꾸는 꿈이다. 싱그러운 햇살.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이 피어나던 좋은 날이었다. 첫 번 째 후계자가 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무속에 숨겨져 있는 헤이젤의 제단을 은신처삼아 그저 배고프면 사냥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타고난 신체는 술에 취할 수 없고, 약을 할 생각도 없었다. 짐승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 즐기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 때였다. 그저 귀찮았다. ‘이대로 그냥 신의 곁으로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죽으면 신의 면전 앞에 무슨 말을 날릴지 몰라서 자려던 참이었다.

 

 

으아아악!”

!

 

 

한 소년이 나무 위 구멍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다가가자 반쯤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다 나무 구멍 사이사이에 설치해둔 독화살에 스쳐서 내버려두면 죽을 게 확실했다. 치료를 해주면서 미리 준비해둔 해독제 하나 날려먹었다고 느끼자 처음으로 첫 후계자가 잠시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미몽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한 게 얼마만일까. 폰이 부른 횟수가 맞는다면 3일 정도이다. 소년은 튼튼했던 모양인지 해독제를 먹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일어났다.

 

 

“...시체!”

시체까지 앞으로 한 발짝이던 사람은 있지만, 넌 아냐.”

 

 

검은 머리카락에 눈을 가진 기미가 심해보이지만 튼튼해 보이는 녀석이다. 이제 열 셋인가 열 넷 정도일까. 어쩌다가 숲 한복판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에 찬 활을 봐서는 사냥을 하다 길을 잃은 것 같다. 파르라고 소개한 소년에게서 감사인사를 받고 폰을 태워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람을 봐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후계자를 잊었는지 울적함이 좀 가시던 기분이 들은 참 이였다. 거기에 어쩌다가 받아버린 성을 물려주는 일도마저 해야 한다. 오랜만에 집은 창을 휘두르며 천천히 몸을 풀던 차였다.

 

 

아스칸님!”

또 왔어?”

 

 

파르는 귀찮게 찾아왔다. 게다가 올 때마다 손에 숲에선 잘 안 나는 먹을거리를 구해 와서 내치기도 어려웠다. 거기에 은신처에 널려져있던 술병들을 본 건지 태반이 안주종류다.

 

 

말했잖냐. 나는 곳 떠날 사람이라고.”

 

 

하지만 파르는 이유를 물어봐도, 데려가주기 전까지는 얘기하지 않겠다면서 매일 매일 찾아왔다. 먹을 걸 들고,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술을 들고. 찾아왔다. ‘며칠이면 가야지, 때어놓고 가야지.’하는 사이에 3일이 흘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파르가 돌아간 낮부터 갈 준비를 하고 밤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어두운 밤. 빈 나무속은 빛 한 점 없었지만 동부에서 사냥 보수대신 얻은 손전등이 있어서 시야확보는 가능했다.

 

 

아스칸님. 계세요?”

어떻게 알았냐?”

 

 

파르가 나무속으로 슬그머니 내려왔다. 요 며칠과 다른 점은 손에든 게 없다는 것 정도다. 무의식적으로 발소리를 죽여 걷는 그 모습은 사냥꾼으로서의 습관이겠지만 어설프다.

 

 

감으로요. 마지막 선물을 드릴까하고 왔어요.”

빨리 주고 가라.”

 

 

파르는 손전등으로 휙 비치자 잠시 눈을 감더니 천천히 떴다. 난 품에서 꺼낸 아마란스 꽃송이를 보고 순간 멱살을 잡고 흔들 뻔했다. 하지만 잠시 몇 초 동안 주시하니 모형이었다.

 

 

왜 가져 왔냐?”

골동품 점에서 봤는데 가장 잘 어울려서요.”

 

 

이 아이가 한 눈에 나를 꿰뚫어 본걸까. 나의 제물을 받지 않는 신의 장난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지독한 우연일까. 이건 어떻게 받아 드려야할까. 이럴 때 내가 취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 때 난 처음으로 파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어봤다.

 

 

나를 따라다니고 싶다고 했지. 그렇다면 대답해라. 가족을, 친구를,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걸 버리고 앞으로의 모든 가능성을 버리더라도 따라올 수 있겠냐?”

제 활과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처음으로 본 눈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메마른 눈빛이었다.....시원한 바람소리와 함께 아스칸은 꿈에서 깨어났다. 마지막 여정의 하늘 위에서 잠이 들었나보다. 옆에서는 파르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아스칸은 꿈의 다음 부분을 위하여 파르의 이마에 꿀밤을 때렸다.

 

.

일어나봐라.”

“...무슨 일이십니까. 스승님.”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났다. 아스칸의 근력은 이미 보통 수준으로 떨어져있었다. 파르는 잠에 취해서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고 반 쯤 졸았다. 12살의 소년은 21살의 청년이 되어있다. 기미는 그대로지만 키도, 목소리도, 활 실력도 그 때와는 많이 틀리다.

 

 

그 때 맹세를 기억하냐?

잊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가 날 따라오겠다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 답도 기억하냐?”

당신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라고 했지요.”

 

 

파르는 친척들이 죽었을 때는 받은 무력함은 크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을 본 일수는 1달이 안됐으니. 그럼에도 너무 슬펐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죽자 올라오는 감정은 감당이 안됐다. 마을 밖으로 나갔다. 육체를 혹사시키고 분노를 화살에 담아 쏘고, 그러다 맹수들에게서 도망치는 걸 반복했다. 며칠을 반복하니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슴이 아파서 반복하다가 처음 올라간 나무에서 떨어졌다.

 

 

파르가 아스칸을 처음 봤을 때 시체인 줄 알았다. 늘어진 몸, 주변에 널려진 술병을,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단검까지. 독에 중독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 사람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을 치료해주고, 만나기 위해서 계속 얘기하다보니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이 사람에게서 그러한 점에 끌렸다고 생각한다. 가슴의 빈자리가 너무 아파서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는 그 때 당시 이렇지 않았을까 정도 밖에 기억이 나지 않을 테지만.

 

꼬맹이가 뭔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설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아프우엑.”

 

아스칸은 파르의 기미 부분과 볼을 잡고 찹쌀떡처럼 반죽했다. 파르는 아스칸이 이런 행동을 한건 처음이었으므로 정신을 잠깐 놨다가 반죽이 끝나자 차렸다.

 

그래도 부모님이 쿨하게 보내주실 줄은 몰랐다. 선생님 때문이냐?”

반은 그렇겠죠. 편지로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걸 보면 남은 반은 자식계획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고...”

 

마지막으로 평범한 대화가 이어지고 9년간의 여행이 끝나간다. 그리폰 폰은 파르의 오랜 고향인 무기들이 잔뜩 쌓여있는 상점으로 사뿐히 착륙했다. 서리늑대 칼파가 그물에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치자 파르는 화살촉으로 요령 좋게 매듭을 풀어줬다.

 

, 이거 받아라.

뭡니까?”

나 가면 펼쳐봐.”

아스칸은 파르가 집에 들어서기 전 편지 한 장을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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