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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캠페인 외전 - 마사무네 (1)

15 2018.09.26 17:21

짧은주소

본문

 

귀 야장의 정점으로 알려진 마사무네의 이름을 잇는 자는 현대의 마사무네를 베어내고 그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 받음으로서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된다.

  - 귀 야장의 정점,마사무네에 대하여 쓰는 16 대 마사무네의 일지


‘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흥건한 피가 손가락 끝에 모여서 작은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나’의 피는 아니었다.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들어올렸다. 곧게 뻗은 날이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며 다시 작아진 ‘나’의 몸을 비추었다. 요술 망치의 힘이 다한 탓에 10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소인의 모습이었다.

이 검을 만들기 위해 보낸 긴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작은 소인의 몸으로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뛰어난 주술사로서의 힘을 가진 덕분에 요괴와 싸우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정의 끝에 도착했고, 자신의 손으로 스승을 베어 넘겨야만 했다.

비록 그가 자신의 최후에 만족했다고는 해도 그것을 직접 해야만 했던 ‘나’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투에서 패하면 그 대가는 자신의 목숨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 평생을 다해 얻어낸 것들을 모두 전해준 그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귀검이 푸른 빛에 휩싸이더니, 이내 잠깐 빛을 발하며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4치 정도에 불과한 크기가 된 그것을 손으로 꽉 쥐었다. 마사무네의 영혼을 흡수한 귀검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들을 빠짐없이 다음 세대의 마사무네에게 전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슈리가 귀검의 봉인을 풀고 지식을 흡수하자 검은 하얀 뼛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이것으로 ‘나’는 새로운 마사무네가 되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시신을 향해 이름을 불러보았다. ‘나’가 아닌 죽은 그의 이름이었다.


“무라마사··.”


마사무네라는 이름을 받게 된 이후부터는 본래의 이름을 버려야 했다. 그 이름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방법 뿐이다. 새로운 마사무네를 만들어냄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마치는 것. 바로 죽음이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마사무네로 활동했던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것이었다. 본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음에도 그는 항상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목패를 품속에 가지고 다녔다. 그는 부를 수도, 불려질 수도 없는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었다. 살아생전 다시는 들어볼 수 없는 이름임에도 그는 그 이름을 누군가에게 불려지고 싶어했다. 귀야장 마사무네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기억되고 싶어했다. 이제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왔느냐?”


모야미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다가왔다. 그와 함께 온 사병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웠던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익숙한 모야미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이 일은 살인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 죽음에 대해 누군가는 반드시 원한을 품기 마련이었다.


“..예, 준비는 끝났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오셨고요. 곧바로 식장으로 오면 된다 하셨습니다.”


모야미토는 그 말만 남긴 채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분노와 나에 대한 혐오가 담겨 있었다.


“꽤나 미움 받으시는 모양이군요.”


위에서 들려오는 말에 마사무네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는 텐구 한 마리가 보였다. 약한 바람과 함께 땅에 사뿐히 내려앉은 텐구를 보며 ‘나’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사쿠라라고 했던가? ”

“맞습니다.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사쿠라가 미소를 지었다.


“요괴까지 온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는데 말이다.”

“단지 추모하기 위해서 온 것 뿐입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마음속 무언가가 뒤틀리는 듯한 것을 느꼈다. 이상하리만큼 아파오는 가슴을 한 손으로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 그럼 가자.”



나는 마사무네라는 이름을 받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들었을 때,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희생까지 각오하면서도 마사무네가 되어 귀야장의 정점에 오르고 싶어했다. 하지만 막상 오르고 나니 무언가 속에서 뒤틀려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급소를 맞은 듯한 강렬한 통증이 몰려왔다. 나는 장례식에 참여한 조문객들을 보며, 그것이 일종의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아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때문에 그가 죽은 것에 대해 슬퍼하는 이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고 진실을 아는 소수의 눈길에 자신을 비난할까 두려워 했다.


“괜찮으십니까?”


사쿠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나는 괜찮다는 대답대신 손을 휘저었다. 나는 한 손으로 가슴을 꼭 움켜쥔채로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았다. 장례식이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남았다. 염주를 찬 이가 칼을 들고 그의 시신이 올려진 제단 앞에 섰다.


“우웁!”


그의 칼이 위로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소인이었던 탓인지 그녀가 사라진 것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에게는 무척 다행인 일이었다.


“커허억..우웩!”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아무리 헛구역질을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속에서 게워내는 것을 거부하고, 속에서 노란 점액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구역질을 멈춘 ‘나’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옥에서 마중나온 저승사자처럼 모야미토가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부터 날 따라온게냐?”


‘나’의 말에 모야미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구처럼 주술 같은건 안믿으니까요. 요괴들이나 해먹을 법한 장례의식은 안합니다. 의지를 잇는다느니 뭐니, 그런 방식으로 이룬다고는 생각 안해서요. 그래서, 여기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나’가 입을 열자 어느순간 뽑아든 모야미토의 검날이 자신의 목 바로 옆까지 날아왔다. ‘나’는 그의 검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막상 해보니 후회가 밀려오는 겁니까? 장례식을 보니 죄책감이라도 가진 건가요?”


“..그렇다. 그렇다면 어쩔 것이냐? 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이냐?”


‘나’는 요술망치를 꺼내들었다. 곧바로 몸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와 눈을 마주볼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나’의 몸에 일어나는 갑작스런 몸의 변화에 놀란 것인지 그는 반응하지 못했고 검날이 ‘나’의 목을 파고 조금 파고들어갔다. 베여진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마사무네는 그런 존재라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이제와서 날 원망할 셈인가?”


“원망? 당연히 합니다. 아니, 하고 있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러는게 아니야. 내가 화나는 건, 네 녀석이 겁쟁이가 되어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거다!”


모야미토는 노호성과 함께 검을 내질렀으나 나는 급히 주술을 사용했고, 나와 모야미토의 바로 옆에 있던 풀숲에서 죽 뻗어난 나뭇가지가 그의 검을 옭아맸다. 그 모습을 본 모야미토는 곧바로 검에 기를 불어넣고 방출시킴으로서 속박을 풀어냈다. 그 사이 나 또한 검을 뽑아들고 그와 대치했다.


“방금전 스승님과의 마지막 결투 때부터 그러더니, 네 모습에서 점점 악취가 나고 있다. 이젠 역겨울 지경이야!”


모야미토가 검강을 발현해 공중을 갈랐다. 나는 그것이 기탄과 유사한 것임을 깨닫고 기를 이용해 온몸을 보호했다. 강렬한 기와 기의 충돌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잃은 ‘나’가 비틀거리자 어느새 뒤로 돌아온 모야미토의 검이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이봐. 일개 검성보다 더 강해야 할 자가 왜 나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거지? 나까지 죽일까봐 그런거냐? 빌어먹을, 나나 스승님은 동정받을 대상 따위가 아니다! 죽을거란 건 알고 있었지 않은가. 네가 잘못된 게 아니란 것도 알고 있지 않았나! ”


모야미토는 검을 거두며 말했다. 강한 검기를 날린 탓에 기력을 거의 소진한 것인지 모야미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분은 네 녀석의 이딴 모습을 보려고 희생한게 아니다.”


나는 주저앉은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모야미토를 올려다 보았다. 이윽고 그는 힘 없는 인형처럼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이러한 소란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쿠라가 날아와 괜찮은지 물었다. 때마침 요술망치의 힘이 다한 탓에 몸은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 덕분에 베인 목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됐다. 저 녀석이나 옮겨 주거라.”


사쿠라는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그를 안고서 날아갔다. 날아가는 사쿠라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모야미토는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에 있는 여성요괴를 보고 곧바로 베어버릴 뻔 했다가,곧 그녀가 장례식에 참석했던 요괴라는 것을 눈치챘다. 목이 날아갈 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쿠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하시던 그 도련님이 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하시더군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러 온거면 나가주시지.”


모야미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사쿠라는 모야미토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말했다.


“걱정되어서 그런것 아닙니까?”


모야미토는 사쿠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모야미토를 보며 사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쿠라는 인간이나 요괴나 이성을 가진 존재들은 솔직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물론, 지나치게 솔직한 다수의 요괴들은 본능에 충실하게 인간들을 잡아먹고 다닌다는게 문제였지만.


“말하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죠.”


사쿠라가 침대에서 일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모야미토가 다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침대 위로 작은 머리 하나가 쏙 올라와 모야미토와 시선을 마주쳤다.


“..뭐하십니까?”


“너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렇다.”


“무슨 말이시죠?”


“어제 네 말이 맞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수록 그를 동정하고 자책할수록 죽은 그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 밖에 안되겠지. 난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그녀가 등에 지고온 작은 원반 같은 것을 받아든 모야미토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끝이 상하로 향하고 있는 두 자루의 검과 그 사이에 피어나는 벚꽃이 새겨진 거울이었다.


“내 뒤를 이을 제자가 되거라. 내 지식과 기술을 받고 대대로 이어진 사명을 이어주거라. 너라면 나를 베어넘겨도 괜찮을 것 같구나. 나 또한 네 스승이자 나의 스승처럼 되고 싶다."

 

"적어도 내 끝은 네 손으로 해달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모야미토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싶었지만, 단단히 결심한 듯 바라보는 얼굴을 보고 거절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스승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그 분 뿐이라는 건 잘 아실텐데요."


"그래, 그러니 너는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한다. 뭐..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대신하는 걸로 치면 되지 않겠느냐?"

 

 

"마사무네. 날 그리 불러다오."

 

 

-사쿠라 캠페인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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